왜 우리는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호주 워홀을 선택했을까?
결혼, 경력, 육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고민한 끝에, 우리 부부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1년’을 살기로 했다.
이 글은 그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나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응원해줬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들려왔다.
“거길 왜 가?”
“그렇게까지 해야 해?”
“돌아오면 경력 단절 아닌가?”
이 질문들에 명쾌하게 답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민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미 안정적인 경력과 일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우리에게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1년’이라는 판단이 섰고, 결국 호주 브리즈번에서의 1년 살이를 선택했다.
작년, 우리는 10년 가까이 연애한 끝에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여행으로 시드니를 다녀왔다.
그 일주일은 한국과는 다른 속도와 분위기 속에서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줬고, 그 경험이 우리를 다시 호주로 이끌게 한 작은 씨앗이 되었다.
우리는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이름이 알려진 기업에 바로 입사했다. 취업난이 심각한 시대에 취준 기간 없이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한 건 분명 행운이었다. 그 행운에 감사하며 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지 ‘감사한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버틸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힘들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대기업 다니는데 뭐가 부족해?” “배부른 소리 말라”는 시선이 걱정되어 감정을 꾹 눌렀고, 결국은 나 자신에게조차 그렇게 말하며 지냈다. 해소되지 않은 마음들은 쌓여만 갔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서히 지쳐갔다.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었고, 요리는 물론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법도 없었다. 눈을 뜨면 출근하고, 해가 지면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현실은 냉정해보였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기르기란 너무 벅차 보였고, 어린이집에 하루 종일 맡겨야 하는 상황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누구 하나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면, 그건 곧 독박육아를 의미했고,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매우 원했던 우리였지만, 구조적으로 출산과 육아가 어렵게 느껴졌다.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는 건데, 일 때문에 삶 전체가 잠식되는 기분이었다. 그 시점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삭막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낮을 수밖에 없지.”
“그러니까 다들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지.”
“이래서 우리가 힘든 거야.”
이런 생각들이 반복됐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는 ‘한 번쯤 멈춰서 삶을 다시 정비할 시간’이 절실해졌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우리는 평생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만 살아왔고, 그 사회가 전부라고 믿으며 살았다.
그러나 한 발짝 떨어져서 다른 사회를 바라보고, 새로운 환경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이 필요했다.
호주에 오겠다고 마음먹은 건 단순히 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땅에서 집을 구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통신을 연결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는 모든 과정을 직접 부딪히며 해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삶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 하나하나가 고생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인생의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은 호주에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이곳에 오고 나서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마음과 생각이 매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언어, 문화, 사람, 환경.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각자 바쁜 일상에 치여 사소한 대화조차 나누기 어려웠지만, 이곳에서는 ‘오늘 뭐 먹을까’, ‘어디 가볼까’ 하는 작고 평범한 대화들이 하루의 중심이 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수년간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버텨왔고, 그 시간 동안 나는 우울증과 불안증약을 복용해왔다.
하지만 이곳의 맑은 공기, 여유로운 분위기, 자연 속 일상이 조금씩 내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다.
약도 서서히 줄이고 있다. 언젠가 아이를 건강한 몸으로 낳고 기를 수 있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또한, 익숙했던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평소에는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시도해보며,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실험해보는 중이다.
실패해도 괜찮고, 다시 돌아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열린 가능성 속에 나를 던져보고 있다.
기록도 그 과정 중 하나다.
블로그를 통해 지금 이 시간을 정리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있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도 소중하다.
언젠가 이 기록들이 모여 내 삶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뭔가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마음보다는, 나에게 맞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어떤 시도는 금방 그만둘 수도 있고, 어떤 경험은 예상치 못한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 불확실함조차도 지금은 충분히 의미 있다.
워킹홀리데이는 단순히 ‘외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이 아니라, 이 시기에만 가능한 자기 탐색의 시간이다.
나와 남편은 각자의 속도로 이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향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호주로 떠나온 가장 큰 이유다.
그 이유는 앞으로도 계속 바뀔 것이다.
변화하는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인생이라는 여정일 테니까.
어떤 선택이든 괜찮다.
스스로를 믿고, 서로가 곁에 있다면 잘 살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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